*** 이글은 CNS 시사법률신문 2004. 7. 27.자(제86호) 12면에 실린 임영호 선생의 칼럼이다 ***
法之林之그 첫 번째 원고
[暗記式學習의 뿌리] 1)
한림법학원 林榮虎
1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는 불볕더위는 TOEIC과 학점취득요건에 이어서 Law School 도입문제로 어수선한 考試街를무자비하게 달구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어수선함이 이미 17년 전의 뜨거웠던 여름에 배종대 선생님이 『우리나라법학에 대한 반성과 전망』2)에서 진단하고 제기했던 문제와 대안들을 무시했던 우리의 業報라는 점을 어쩔 수 없이 기억하면서 우리가 이 여름에 흘리는 땀이 진땀인지 식은땀인지를 우리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고필자는 판단한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그러한 業報중에서도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의 考試를 비롯한 모든 시험영역에서유일한 대안으로 당연시되는 이른바 ?찍기식 암기형 학습?의 뿌리를, 위의 배종대 선생님의 논문을 다시 읽으면서, 잠시스케치해보기로 한다.
1875년의 ‘운요오호 사건’을 계기로 체결된 불평등조약인 병자수호조규를 기점으로, ‘조선의 法의 개혁’이라는 美名하에자행된, 아직도 오늘날 우리의 교과서에서 ‘근대 서구법의 계수’라는 황홀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日帝의 식민통치수단으로서의 반민주적인 법의 강요와 극소수 친일기득권층의 법학독점의 보호를 통한 자생적 법문화 가능성의 발본색원은,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한 日帝의 만주군관학교 同門으로 구성된 박정희 일당과 그 후계자들에 의한 반민주적인 폭압적 군사깡패정권의 후원을 거치면서3), 우리법학을 일본법학의 노예법학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에 거의 완벽하게 성공하였다.그에 따라, “해방 후 우리나라는 우리의 언어?풍습?가치관에 터잡은 입법을 도외시한” 채, ‘舊法’4)인 일본법을 ‘가나(かな)’로 된 토씨만 우리말로 바꾸어 제정하고, 그에 관한 법학과 법개념까지 한 세트로 직수입?표절하였다5). 그런데, 일본의 법률용어와 법개념은, ‘메이지 維新’ 당시의 계몽적 학자6)들이 서양의 法文化자체를 열등한 것으로 깔보았던 일본의지성인들을 속여서 서양법문화를 어마어마한 것으로 과장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중국고전의 어려운 文語的표현을 차용하여 번역한 것들이었다7). 일본어 교육을 받지 않은 해방 후의 법학도들은 “교과서를 도배질한 일본식의 법개념?법이론을 이해에 앞서서 달달외는 도리 밖에 없었다. 따라서 법학은 이해학문이 아닌 암기학문이 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국가고시를 패스하여 판?검사라는 ‘영감’이 되기 위한 첩경이기도 했다”. “우리 법학계의 ‘표절’의 수입선은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다변화하”여 독일 등의 서양법학과 법개념이 수입되었으나, 역시 그 번역어는 일본법학의 번역어를 모방하거나 비슷한 한문 문어투의 번역이 고수되어 법학도와 고시생의 수험현실에는 별 변화가 없게 되었다. 결국,우리의 법학도와 고시생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이어서 여전히 ‘四書三經’류의 중국고전을 일본인이 改作한 단편적인 개념으로 분해하여 뜻도 모르는 채 아무런 통계학적 근거도 없는 ‘Lotto’식 찍기에 의존하여 암기하고 있을 뿐이다.
단순암기에 내용의 탐구가 필요할 리 만무하고, 내용의 탐구가 필요없는 데 大學과 專攻이 존재가치를 유지할 리 만무하다. 오직 합격인원의 증가에 따른 기득권수호방안으로 미봉책인 진입장벽들 만이 정치적 홍보효과와 야합하여 난무할뿐이다. TOEIC은 미국 장사치의 배만 불리고, 학점취득요건은 대학교육파탄의 확인사살이며, 섣부른 Law School의 도입은, 아마도, 법학 자체의 붕괴?소멸을 초래하여 이론없는 실무라는 괴물단지를 창조하게 되고, 결국, 우리는 正義가없는 技術에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내팽개치게 될 것이다.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은 進入의 통제가 아니라 暗記의 통제가 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이해는 암기보다 몇 배나 쉽고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암기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어마어마한 효능과 실력의 풍요를 가져온다. 이에 관한 진솔한 스케치는 다음 호에 실리는 것이 약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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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가 곽윤직시리즈를 고집하며 속칭 ‘신림9동 고시촌’의 고시학원에서 민법강의라는 것을 시작한 지도 어언 6년여가 흘러가고 있다. 고시생의 기품있는 벗으로 자리잡은 .시사법률신문.에서 이번 호부터 귀한 칼럼란 한 귀퉁이를 부족한 필자에게 나누어 주기로 하였기에, 그 동안의 강의와관련하여 평소에 느꼈던 점들과 수강생들에게 못다했던 이야기들을, 고시생들이 반드시 읽었어야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중한 내용들과 함께,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나누어 보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여 감히 拙筆亂書를 올리기로 한다.
2) .현상과 인식.(1987. 8.), 90쪽 이하. 이하에서 인용부호로 인용한 인용문은 본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3) 해방 후 대학 강단에 섰던 헌법학 제1세대는 대부분 식민지 시대의 日帝의 하급관료 출신이었고(우선, 국순옥, .자본주의와 헌법., 까치, ‘편역자 서문’ 참조), 그들 중의 일부가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만들어 상납하고, 당시에 東獨에만 있던 惡法인 ‘교수재임용법’을 수입하여 그에 저항한 수많은 동료학자들을 숙청하여 강단에서 쫓아낸 사실은 公知의 사실들이다.
4) 어쩌면, 이러한 용어 자체가 우리의 현행법질서가 식민지시대의 법질서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도 모른다.
5) 이는 지금도 별 차이가 없는 현상이다. 예컨대, 양창수 교수가 .민법연구[제1권].에서, “우리 民法學의 수준에 대한 참담한 自己告白”(351쪽)이라고했던 1983년의 가등기담보등에관한법률이, “.., 규정의 배열이나 체제, 심지어는 조문수도 완전히 일치하고 있”(304쪽)어서, 곽윤직 선생님으로부터 .“거의 완전한 모사”.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일본의 가등기담보계약에관한법률을 거의 그대로 무단복제하였다는 사실은, 해방 후 30년이 지나도 일본의 사실상의 식민치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6) 대표적 학자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우리가 법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의 하나인 .權利.라는 용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에 관하여는, 우선,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남상영.사사가와 고이치 옮김, .학문의 권장., 小花, 13, 228쪽 참조. 이 책은 제자인 정준모 변호사가 바쁜시간을 쪼개어 필자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 고마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은 선생인 나의 자랑스러운 권리일 것이다)을 아는 법학도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를 자문자답해보면, 거짓과 기만으로 inferiority complex를 감추려는 우리 학문의 저급하고 비열한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에 비한다면, computer software의 무단복제는 오히려 철없는 아이들의 지엽말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7) 철학용어의 사정에 관하여는, 김용옥, .철학의 사회성., 세계의 문학[1985. 여름], 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