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법사상가열전 6 –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라트브루흐 [Radbruch, Gustav Lambert, 1878.11.21~1949.11.23]

독일의 법철학자.

국적 독일
활동분야 법철학
출생지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 뤼베크
주요저서 《법철학 요강》(1914∼1950)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 뤼베크 출생. 뮌헨 ·라이프치히 ·베를린의 각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1903년부터 하이델베르크대학 강사로서 형법 ·법철학을 강의하고, 쾨니히스베르크대학 ·킬대학의 교수를 거쳐 1926년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로 일생을 보냈다. 신(新)칸트주의의 입장에서 존재와 당위(當爲)를 구별하고, 궁극적 가치판단에 대하여서는 인식이 아니라 귀의(歸依)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으며, 상이한 세계관에 대한 관용을 주장함으로써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았다.

사회민주당 내각의 사법장관으로서 형법 초안을 기초하였고, 히틀러 정권 때에는 자유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강단에서 쫓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치상대주의를 수정하였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논의가 있었으나, 자연법적 경향을 띠었을 뿐, 자연법으로 전향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대표적 저서로는 《법철학 요강 Grundzuge der Rechtsphilosophie》(1914∼1950)이 있다.

근대법사상가열전 5 –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사비니 [Savigny, Friedrich Karl von, 1779.2.21~1861.10.25]
독일의 법학자.

국적 독일
활동분야 법학
출생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주요저서 《현대 로마법체계》(1840∼1849)

역사법학파(歷史法學派)의 창시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출생. 괴팅겐대학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공부하고, 1808년에 란츠후트대학 교수, 1810년 베를린대학 창립과 함께 그 교수로 부임하였다. 이어 초대 학장이 되었고, 1842년에는 프로이센 사법상에 취임하여 1848년까지 일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학문연구에 전념하다가 83세로 베를린에서 죽었다. 그는 그 당시의 제1급 로마니스트로서 19세기 전반의 독일 법학계를 지도한 역사법학파의 대표자였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A.티보가 국민적 통일을 위하여 통일법전 편찬을 강조하자 그는 1814년에 《입법 및 법률학에 대한 현대의 사명에 대하여》라는 소책자를 발표하여 독일의 입법에 있어서 정책적 이유 때문에 국민의 법적 확신을 무시하여 법전편찬을 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였다. 즉, 그는 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민족과 함께 발달하고 민족과 함께 멸망하는 민족정신의 표현이라고 하여 법형성의 주체를 민족정신에 구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로마법을 민족정신의 표현이라 보고 로마법의 역사적 연구를 중요시하여 정확한 개념구성, 정밀한 법원론(法源論), 면밀한 논리구성 등을 가지고 로마법의 새로운 통일적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법률학의 사명이라고 주장하여 《현대 로마법체계 System des heutigenrmischen Rechts》(8권, 1840∼1849)를 저술하여 독일 민법학(民法學)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또한 국제 사법학(私法學)의 수립에도 공헌하여 그 학설의 영향은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미치게 되었다. 주요저서에 《소유법(所有法) Das Recht des Besitzes》(1803) 《입법 및 법률학에 대한 현대의 사명에 대하여 Vom Beruf unserer Zeit fr Gesetzgebung und Rechtswissenschaft》(1814) 《중세 로마법사 Geschichte des rmischen Rechts im Mittelalter》(6권, 1815∼1831) 등이 있고, 이 외에 《논문집》(5권, 1850) 《채무법(債務法)》(2권, 1851∼1853) 등이 있다.

근대법사상가열전 3 – 체자레 베카리아

베카리아 [Beccaria, Cesare Bonesana Marchese di, 1738.3.15~1794.11.28]
이탈리아의 형법학자·경제학자·철학자.

별칭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
국적 이탈리아
활동분야 법학, 경제학
출생지 이탈리아 밀라노
주요저서 《범죄와 형벌 Dei delitti e delle pene》(1764)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로서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밀라노의 귀족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1758년 파비아대학교로부터 법학박사의 학위를 받았고, 1768년에 밀라노대학의 경제학·법률학 교수가 되었다. 영국·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그는, 친구와 함께 잡지 《일 카페 Il Caff》를 발행하여 계몽주의 문명사상을 고취하였다. 그 중에서도 당시의 전제적인 형사재판에 대하여 맹렬한 비판을 퍼부었으며, 1764년에 유명한 저서 《범죄와 형벌 Dei delitti e delle pene》을 발표하여 일약 형법학자로서 유명해졌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로부터 법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즉, 사회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형벌은 부당한 것이며, 형벌은 마땅히 입법자에 의하여 법률로 엄밀히 규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로 인해 중세의 주관주의적 형법사상에 대해 근대적 객관주의의 형법사상이 확립되게 되어, 당시의 서유럽 지식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22개국의 국어로 번역될 만큼 형법 근대화에 매우 큰 공헌을 하였다. 이처럼 자유주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그의 형법이론의 중심이 된 것은, 사회계약설에 의한 국가형벌권의 근거설정에 있었으며, 그 결과 형벌은 어디까지나 범죄의 경중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그 균형은 법률로써 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의 사상과 고문·사형의 폐지론 등을 낳게 하였다. 경제학자로서의 그는 중농주의자로서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경제학상 가장 중요한 저서 《Elementi di economia pubblica》(1804)는 경제분석에 처음으로 수학을 이용한 저술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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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d Row – Holidays in the sun (moscow music peace)

고등학교 때 (1990년쯤) 종로 파고다공원 맞은편의 지하의 뮤직랜드라는 대형 레코드점이 있었는데…(지금도 있나?)
거기서 모스코바 뮤직 피스 페스티벌을 보여 준다고 해서 친구들과 같이 가서….
레코드점 안의 대형 스크린으로 몇시간동안 서서 본 기억이 난다…..
그때 참 설레이는 마음으로 구경 갔었는데….
공연도 아니고 비디오 틀어주는건데도, 그때는 그런 문화를 접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지금보면 그 때는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없었다…
나는 요즘도 락공연을 보면 가만히 앉아서 보는 습관이 있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있지만
어렸을때 부터 메탈음악을 가만히 앉아서 들어서 그런것 같다.
우리에게 메탈음악은 듣는것 이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