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Lion – Love Don’t Come Easy

아름다운 멜로디의 어쿠스틱 발라드 ‘When The Children Cry’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화이트 라이온(White Lion)은 본 조비(Bon Jovi), 포이즌(Poison), 유럽(Europe) 등이 큰 성공을 거두며 팝메탈 전성기를 열었던 87년에 애틀란틱(Atlantic) 레코드사를 통해 공식 데뷔해서 5년간 베스트를 포함해 4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두 곡의 Top 10 싱글을 배출하는 등 성공적인 활동을 벌여 80년대 후반 대표적인 팝메탈 밴드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83년에 본격적으로 팀을 결성한 기타리스트 비토 브라타와 보컬 마이크 트램프는 여느 밴드처럼 클럽 등지에서 지지기반을 쌓아나갔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레코드를 취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84년 일본 내에서만 발매된 [Fight To Survive]라는 앨범을 제작한다. 이 앨범은 그리 대단한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들에 대한 입소문을 미국으로 퍼뜨리는 계기가 됐고 이듬해에 한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미국내에서 발매되었다.
이 와중에 이들은 애틀란틱 레코드와 연결이 되었고 마침내 정식 계약을 체결, 87년에 공식 데뷔앨범을 발표한다. 당시 애틀란틱에서 자사의 유망 밴드로 지목한 덕분에 레코드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앨범 홍보에서 큰 이득을 얻은 화이트 라이언은 수퍼밴드 에어로스미쓰(Aerosmith)의 오프닝 밴드로 기용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한편 데뷔앨범 [Pride]의 수록곡 ‘Wait’가 싱글차트 8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들의 지명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두 번째 싱글 ‘Tell Me’가 차트 58위에 랭크되었고, 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날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곡인 ‘When The Children Cry’가 세 번째 싱글로 커트되어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이 곡은 화이트 라이언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여느 팝메탈 밴드와 다를 것 없이 이들은 MTV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인기몰이를 계속했고 데뷔 앨범은 2집 발매 전까지 200만장이나 팔려나간다. 88년초 각종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신인밴드’상을 수상하며 밴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8년 한 해를 에어로스미스와의 유럽 순회공연으로 보낸 이들은 89년 팬들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2집 [Big Game]을 발표한다. ‘Radar Love’가 첫 싱글로 커트된 2집 [Big Game]은 기타리스트 비토 브라타가 여러 기타 매거진에 의해 ‘우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도록 한 작품이었다. 그는 기타 플레이어(Guitar Player)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2집 발표 이후 성황리에 월드투어를 치룬 이들은 역시 2년여 만인 91년에 3집 [Mane Attraction]을 발표한다. ‘Lights And Thunder’와 같은 대곡이 수록된 이 앨범에는 팝메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화이트 라이언의 음악적 성숙이 담겨있었다. ‘Broken Heart’, ‘Love Don’t Come Easy’같은 히트곡들은 물론 다분히 팝적이긴 했지만 그간에 보여준 단순한 팝메탈과는 노선을 달리하는 ‘무게있는’ 곡들이었고, 평론가들의 견해도 전작들에 비해 월등히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90년 이후에 발표된 많은 팝메탈(LA메탈) 밴드들의 앨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런 음악적 변신이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별로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3집(국내의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을 발표하고 여느때와 다를 바 없이 크고작은 공연을 치룬 이들은 이 앨범을 끝으로 해산한다.
밴드 해체 이후 애틀란틱 레코드사는 재빨리 이들의 지난 5년간 활동을 정리한 베스트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라이브 2곡을 포함해 1집에서 6곡, 2집에서 3곡, 3집에서 4곡이 발췌 수록돼 있다.
뿔뿔이 흩어진 후 비토 브라타와 마이크 트램프는 각자 솔로 활동을, 나머지 멤버들은 솔로 아티스트의 세션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 홍성원
83년 MTV가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대중화된 헤비메틀계는 팝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듣기 편한 발라드 위주의 사운드를 지향하는 이른바 팝 메틀(Pop Metal)이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된다. 물론 이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잘 생긴 외모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쪽에도 상당한 신경을 쓰게 되는데, 이때부터 뮤직비디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 된다.
화이트 라이언(White Lion)은 바로 이 시기에 출현한 뉴욕 출신의 4인조 그룹으로, 보컬리스트 마이크 트램프(Mike Tramp)와 기타리스트 비토 브래타(Vito Bratta)가 만나면서 결성된다.
83년 베이시스트 펠릭스 로빈슨(Felix Robinson)과 드러머 데이브 카포지(Dave Capozzi)를 영입하여 4인조 체계를 갖춘 화이트 라이언(White Lion)은 Elektra Records를 통해 데뷔 앨범 [Fight to Survive]를 발표한다.
역시 쉬운 멜로디 위주의 곡들로 구성된 이 앨범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영국에서는 3개월간 앨범 차트 1위에 머무는 쾌거를 거둔다.
이후 드럼에 Greg D’angelo와 베이스에 James Lomenzo가 새로 교체된 밴드는 87년 2집 앨범 [Pride]를 발표한다. 이들의 최고 성공작으로 기록된 이 앨범에는 ‘Wait(빌보드 8위)’, ‘When the Children Cry(빌보드 3위)’와 같은 대 히트곡이 담겨져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이들의 팬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89년에는 세 번째 앨범 [Big Game]을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 역시 많은 히트곡을 낳으며 상업적인 성공을 이어간다.
91년 4집 앨범인 [Mane Attraction]에서는 다소 진지한 가사와 효과음을 삽입하는 등의 실험적이고 서사적인 곡들을 추구하는 새로운 면을 보이기도 한다.
이 앨범 이후 또다시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교체되는 과정을 거친 밴드는 92년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해체되고 만다.
80년대에 편안한 사운드로 4장의 앨범을 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룹 화이트 라이언(White Lion)은 멤버들의 실력 있는 연주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감성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냈으며, 메틀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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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
마이크 트램프(Mike Tramp) : 보컬
비토 브라타(Vito Bratta) : 기타
펠릭스 로빈슨(Felix Robinson) : 베이스
니키 캐포지(Nicky Capozzi) : 드럼
제임스 로멘조(James Lomezo) : 베이스
데이브 스피츠(Dave Spitz) : 베이스
그렉 댄젤로(Greg “Kickin’ Ass” D’Angelo) : 드럼
토미 티본 카라도나(Tommy T-Bone Caradonna) : 베이스
지미 드그라소(Jimmy Degrasso) : 드럼
82년 스페인으로부터 산타 모니카로 이주한 마이크 트램프는 기타리스트인 비토 브라타와 조우하였으며 펠릭스 로빈슨, 니키 캐포지와 함께 화이트 라이온을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엘렉트라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데뷔앨범인 [Fight To Survive]를 레코딩했지만 발매를 앞두고 돌연 엘렉트라 레코드가 등을 도리는 바람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 뒷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엘렉트라 레코드 소속이던 한 밴드가 화이트 라이온의 성공을 시기한 나머지 레코드사를 부추겨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결국 이 앨범은 일본에서 발매되었는데, 발매와 더불어 골드를 기록했으며 유럽에서도 큰 홍을 얻어 미국으로 역수입되는 기현상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애틀랜틱 레코드가 이들과 계약을 맺게 되었는데 이당시 밴드의 라인업이 변경되어 제임스 로멘조와 그렉 댄젤로가 새로이 영입되어 [Pride]를 발표한 뒤 88년 11월까지 월드투어에 나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투어에서 돌아온 화이트 라이온은 스튜디오에 입성하여 [Big Game]을 발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어진 투어에서 돌아온 이들은 91년 리치 지토(Richie Zito)의 프로듀싱으로 새앨범인 [Mane Attraction]을 발표하여 다시금 차트의 정상에 등극하엿다. 이 앨범의 첫 싱글은 ‘Love Don’t Come Easy’였으며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의 추도곡인 ‘Blue Monday’가 인스트루멘틀 곡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이후 이 앨범의 투어 도중 화이트 라이온은 해산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토미 티본 카라도나와 지미 드그라소가 가입하여 투어를 마치기는 했지만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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